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인물

(10)
양궁 3관왕 금메달리스트 안산 소개, 안산 가족, 안산 취미 2001년 2월 27일 (20세) (죽산 안씨)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170cm, 63kg, O형 아버지 안경우(1967년생), 어머니 구명순(1971년생), 언니 안솔, 남동생 안결 문산초등학교 - 광주체육중학교 - 광주체육고등학교 - 광주여자대학교 불교, INFP 쫄지 말고 대충 쏴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전에서, 슛오프 때 한 생각.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2018년에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였으며, 이후 2021년 현재까지 계속 국가대표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혼성 단체전 금메달, 여자 단체전 금메달,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총 3관왕에 성공하면서 올림픽 사상 첫 양궁 3관왕,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사상 첫 3관왕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
조훈현 국수 - 삶과 전성기 프로기사 인생 1952년 3월 10일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창녕 조씨 A형 아내 정미화, 슬하 1남 2녀 서울삼선초등학교 - 신메이중학교 - 목포대학교 입단 - 1962년(한국기원) 1966년(일본기원) 우승횟수 - 160회 (한국 바둑기사 1위) 보유기록 - 세계 바둑계 최초 전관왕, 세계 최초 바둑 국제기전 그랜드슬램, 바둑기사 최다 연속우승 기록 1부 - 바둑기사 조훈현, 국수 조훈현 - 생애와 삶 https://gameabout.tistory.com/153 바둑기사 조훈현, 국수 조훈현 - 생애와 삶 대한민국의 바둑기사, 정치인이다.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최초의 九단이다. 일명 '조국수', '쿤켄'. 한국 바둑계의 역사 중 하나로 표현되는 정상급 기사. 이창호 九단의 스승이자 일종의 gameabout..
바둑기사 조훈현, 국수 조훈현 - 생애와 삶 대한민국의 바둑기사, 정치인이다.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최초의 九단이다. 일명 '조국수', '쿤켄'. 한국 바둑계의 역사 중 하나로 표현되는 정상급 기사. 이창호 九단의 스승이자 일종의 대부이며, 한때 이창호와 라이벌 구도였던 적도 있었다. 대부분 기사의 전성기가 한 차례에 그친다는 점을 볼 때, 조훈현의 경우 대략 3-4 차례 전성기가 약 30여 년에 걸쳐 차례차례 왔으며 3차 전관왕 이후 전성기는 상대가 이론의 여지 없이 세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던 이창호 九단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그야말로 불세출의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정상급에서 활약한 시간, 전성기의 횟수 등을 따진다면 교통사고 후 극적으로 부활하여 대삼관을 한 번 더 차지한 일본기원의 조치훈 九단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경력을..
이창호 별명, 여가, 이창호 여담. 이창호 생활 별명은 강태공, 신산, 돌부처. 중국의 언론에서는 '大李(큰 '이' 씨)'라고 부르기도 한다(작은 '이' 씨, 小李는 이세돌 九단이다). 다른 손잡이이다. 원래는 왼손잡이지만 조훈현 九단의 강력한 교정으로 바둑을 둘 때는 오른손으로 둔다. 이창호의 명언중 노력이 많이 나온다. 사실 타인들에겐 천재 기사라고 불리지만 이창호 본인은 노력을 중시했다는걸 엿볼 수 있다. 연애 쪽으론 매우 사생활이 깨끗했다. 그러다 11세 연하인 바둑 전문기자 이도윤과 교제를 시작했고, 36세인 2010년 10월 28일에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많은 바둑인들의 숙원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결혼식은 가족들과 친지들만 초청하고 바둑 관계자는 일절 부르지 않은 채 소박하게 진행했다고 한다. 다만 조훈현 국수 내외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서 초..
바둑의 신 - 이창호의 명언. 부득탐승. 순류와 역류. 노력과 재능 중요한 승부에서 패하고도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사람은 이미 프로가 아니다. 그것은 인품과 무관하다. 승부사에게 패배의 아픔은 항상 생생한 날 것이어야 한다. 늘 승자가 될수는 없지만 패자의 역할에 길들여져서는 안된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킬때에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의 역류에 순류를 유지한다면 상대에겐 그것이 역류가 된다.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고 노력을 외면하는 결과도 없다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결과는 없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중에 상대를 낮게 보았던것 같다. 스스로 교만한줄 모르는것이 자만의 포석이고, 아예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자만의 중반전이며, 심지어 자신이 겸손하다고 착각하는것이 자만의 끝내기이다. 위험한 곳을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 만이 용기가 아니다. 뛰어들고 싶은..
이창호 - 기풍과 묘수 이창호의 바둑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하자면 두터움, 침착함, 형세판단, 끝내기다. 강태공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느려 보이나 두터운 행마를 주무기로 삼았다. 스승인 조훈현이 쾌속행마로 제비라는 별명을 얻은 것을 생각하면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게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다. 다른 기사들이 아무리 유리해도 두텁고 침착하게 두어 정확한 끝내기로 마무리해 역전시키니 그 중압감과 패배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나이웨이가 "이창호 九단과 바둑을 두면 참 이상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는데도 바둑은 언제나 불리한 것 같다." 했을 정도. 상대는 '초중반에 유리한 국면으로 만들지 않으면 후반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무리수를 두고, 그러다가 후반에 이창호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창..
이창호 - 상하이 대첩, 제6회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농심배 우승을 결정짓고 나서 이창호 九단이 우승컵을 받은 장면. 바둑계의 전설적인 리버스 스윕, 상하이 대첩이 있었던 대회. 제6회 농심신라면배 대회. 2004년 10월 12일 개최되어 2005년 2월 26일 14국을 끝으로 종료되었다. 이창호 九단의 5연승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이 우승하였다. 이창호 九단을 제외한 한국 기사들이 전부 탈락한 상태에서, 이창호 九단이 극적으로 5연승을 거둬 한국이 대역전, 우승하여 일명 '상하이 대첩'으로 불린다. 상대한 기사들은 중국 대표 3명, 일본 대표 2명이었으나 모두 (대만인을 포함한) 중국인들이었다. 참가선수 단수는 출전당시 기준. 한국 : 한종진 五단(선봉), 안달훈 六단, 유창혁 九단, 최철한 九단, 이창호 九단(대장) 일본 : 미무라 도모야스 九단(선봉), ..
이창호의 생애 - 바둑의 신 1975년 7월 29일, 아버지 이재룡, 어머니 채수희 사이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현재의 조용하기만 한 이미지와 달리 어릴 적의 이창호는 곱게 자란 부자집 도련님에 꽤 고집이 세고 식탐도 있던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의 동생에 따르면 어릴 적 이창호가 문구점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안 사주자 아무 말 없이 씩씩거리다가 그대로 문구점 유리에 몸을 내던져 머리를 박고 기절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무서운건 깨진 유리에 머리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붕대를 감고 온 뒤 다음날에도 바둑을 두었다고... 물론 그런 고집이 후에 뚝심이 되어 천재라는 속성과 합쳐져 돌부처 바둑신 이창호의 근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였던 이화춘(86년 사망)에게서 바둑을 처음 배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