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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원희룡 제주지사 대선 출마. 원희룡 생애. 원희룡 관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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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주요 대선 일정, 제1여야 경선 일정

대선 주요 일정 2021년 7월 12일 : 예비후보자 등록 2022년 2월 13일 : 후보자등록 신청 2022년 2월 15일 : 대선 후보자 토론회 시작 (1차, 2차, 3차 총 3회) 2022년 10월 : 더불어 민주당 최종 후보자 확정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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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소속 원희룡 제주지사가 오는 25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원 지사 측 핵심 관계자는 19일 본지 통화에서 “원 지사가 제주도 코로나 대응을 위해 지사직 사퇴를 미루는 대신 대선 출마 선언부터 먼저 할 예정”이라며 “25일쯤 온라인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원 지사는 당초 지난 11일쯤 지사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도정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당분간 지사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 지사 측 관계자는 “휴가철을 맞아 제주도 코로나 위기관리에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며 “원 지사는 본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원 지사는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발생한 전반적인 국가 위기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의 메시지를 내면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원 지사는 출마 선언과 동시에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기자 단체 카톡방’을 만들 예정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전언 정치’로 비판받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원 지사는 앞서 지난 17일에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위원장은 원 지사에게 “하루라도 빨리 전력투구하고 국민들한테 부각돼야 한다”며 “조언해줄 수 있는 부분은 조언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희룡 관련주

SAT

디지탈옵틱

파인디지털

제주반도체

누리플랜

 

개요

제16~18대 국회의원을 거쳐 현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역임중인 원희룡의 생애 문서이다.

어린~학창 시절

1964년 2월 14일, 제주도 서귀포(당시 남제주군)에서 14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 집안인 원응두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은 제주도에서 지내왔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집안에 전기불이 안 들어왔다고 한다. 1년에 쌀밥이나 고기는 구경조차 못 해봤고, 찢어진 고무신을 신고 다녀야 할 만큼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이었다. 원희룡의 부친은 과자가게, 배추장사, 농약상, 신발가게, 책방 등 여러 사업을 전전했지만 잘 안 되어서 온 가족이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기도 했고 같은 동네에서 이사만 10번 넘게 다녀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서점을 하다가 관둔 덕에, 집 한켠에 쌓인 재고서적을 원없이 많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1]

어느 날은 술 취한 빚쟁이가 집에 들이 닥쳐서 마루에 칼을 꽂고 부모님을 독촉하고 협박하는 모습을 훔쳐 봐야 했다. 그때 가난이란 게 무엇인지 처음 실감하게 되었으며, 이를 극복해 보고자 공부를 시작하였다. 서귀포 중문초등학교, 중문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는 제주 시내로 진학하게 돼서 긴 거리를 통학해야 했다.



제주도 제주제일고등학교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더불어 전국적으로 치른 12차례의 시험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며 기대를 모으던 중 1982년도 제1회 대입 학력고사까지 수석을 차지한 것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가 살던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낙후된 곳이었단 점이다. 대도시의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학생들이 우수한 인프라 속에서 공부하는 상황에서 원희룡은 과외 한번 받아보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서 우수한 결과를 얻었다. 전국 수석의 단골소감 유행어가 된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라는 말을 최초로 발언한 원조 공부의 신이자 제주도가 낳은 천재라고 불린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으로 진학하면서 "장차 대한민국을 위해 막스 베버와 같은 법사회학자가 되고 싶다" 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력고사 전국 수석까지 가히 개천에서 용났다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82년 대학진학 이후 신군부 독재의 폭압적 정치현실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이 중심이 된 지하서클 '사회복지연구회'에 가입해 체계적으로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의식에 더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다 서울대 구내에서 전경들의 여학생 추행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분노하여 항의시위에 참가하게 되었고, 호주머니에서 시위 관련 유인물이 발견되어 관악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며칠 구금되었다가 훈방 조치가 되긴 했지만 학교로부터 유기정학을 받게 된다. 당시 서울대 수석 입학생의 유기정학 조치는 대학가에서도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8년간 본격적인 운동권의 길을 가게 되는데, 1984년에는 대학 동기 4명과 함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오거리에서 노학연대 데모를 위한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남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구속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며, 당국의 주목 대상이 되어 몇 차례 경찰 수배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 무렵 야학과 노동운동에도 뛰어들었는데, 구로공단의 한 교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했으며, 인천의 금속공장 등지에서 노동자로 위장취업을 하여 하루 일당 2,900원을 받으며 삶을 살아갔다. 

"주체사상이 아닌, 노동자들 입장에서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야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을 보고 사상적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며 졸업할 시기에 이르자 사회인으로 일해보기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법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1990년 말에 시작해 2년밖에 안 되는 준비기간 동안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패스했다. 그리고 사법연수원(24기)에서 최상위권인 5등의 성적으로 수료했다.



군 복무는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잠시 논란이 되었으나, 자신의 발가락을 인증하며 해명했다. 5살 무렵 부모님이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실던 리어카에 올라 타다가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끼어 들어가면서 오른발 2번째 발가락이 거의 절단되었다. 그리고 잘라진 발가락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괴이한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아들이 다치자 황급히 동네 시골의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게 했지만, 당시 제주도 중문지역의 낙후된 의료시설로는 제대로 된 진료가 어려워서 결국 기형으로 남게 되었다.

과거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었지만,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하여 재개발조합사기사건, 딱지어음사건, 다단계 피라미드 범죄 등 주로 경제사범 소탕에 열중하였으며 부산지검 강력부에 있을 때는 무술합계만 도합 40단이 넘는 검찰 수사관 18명을 데리고 지역 내 조직폭력 및 마약사범과 매일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또한 아가동산 사건의 수사팀이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8월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그리고 1999년 당시 젊은 피 수혈에 열을 올리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고 천명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보수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제주 출신 중에서 별다른 배경없이 오직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정계 핵심인물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명망이 대단히 높다는 의견이 있다. (출처 등 내용 보완 바람) 제주도 토박이 중·장년층 기준으로는 사실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 경북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지역에서 보수후보가 참패를 기록했는데 제주에서는 원희룡이 11.71% 격차로 승리하는데 한 요인이 되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 1980~90년대 이전에 고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었을 만큼 유명했다. 이는 제주도가 좁고 인구가 적어서 전국 수석이 나올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희룡과 동갑내기였던 당시 제주시내 여고에는 원희룡의 이름이 원'일용'으로 잘못 소문나기도 했었다.

현재 제주도지사로서 지역 내 중국자본에 대한 일부 언론의 악의적 왜곡과 과장보도로 수많은 대중들의 오해를 받고 있지만 사실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별도의 대응은 하지 않고 있고, 묵묵히 제주도내 부동산 투기규제 강화 정책 중국을 비롯한 외국자본 투자유치 제동에 전념하고 있다.

취임 직후 그동안 진행 중이던 대규모 투자개발을 대부분 중단하였고. 2018년 3월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신규 외국 자본 투자유치를 받지 않았음에도 사실관계를 착각하고 있는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고의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제주도 땅 다 팔아먹는다"는 식의 악성 허위사실 유포와 누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반면, 중국 현지 언론으로부터는 "지사가 새로 바뀌니 볜롄(变脸/變臉, 변검)하느냐"며 "한국 행정에 일관성이 없다"고 비난을 받고 있다.

한편 그가 추진 중인 서민 주택난 해소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보급정책과 제주 신공항 건립사업은 입지선정과 관련하여 지역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지역 여론과 민심에 더 민감하게 대처하고 소통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할 듯 하다.

이외에도 제주 대중교통체계 전면 개편 추진, 쓰레기처리 문제, 하수종말 처리장 시설개선 및 공급 확대 등 지역사회에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아서 "도정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2017년 1월 31일에는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도지사 취임 초인 2014년만 해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한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제주도는 전국 17개 시.도 중에 16위로 전국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 하에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행정의 투명성 제고 및 부패유발유인 제거를 위한 제도개선을 과감하게 추진한 결과, 취임 1년차인 2015년 청렴도 지수가 14위로 상승하였고, 취임 2년차인 2016년 12위로 상승하였으며, 취임 3년차인 2017년에는 4위로 급상승하였다.

또한 채무감축으로 인한 건전재정 구현을 위하여 2015년 1월 절감예산, 효과중심예산, 참여확대예산을 3대 예산개혁 기본원칙으로 천명하고 재정개혁을 지속해서 추진해온 결과, 4,000억원이 넘는 지방부채가 취임 1년차인 2015년 말 2,477억원으로 감소하였고, 취임 2년차인 2016년 말 1,321억원으로 감소하였으며, 취임 3년차인 2017년 12월 20일에는 남은 외부차입금 1,321억원을 모두 상환함으로써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경남에 이어 채무감축률 순위 2위(45%)를 기록하며 ‘지방채무 제로’를 달성하였다.

이런 개혁에 기반하여 지난 4년간 제주도의 경제성장률은 꾸준히 연 5% 이상을 유지하였고, 2016년부터는 경제성장률 7.3%대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같은 해 지역내총생산(GRDP)은 16조 9,000억원으로 전국 1%대로 진입하였다.

위와 같은 지역경제 호황으로 제주도의 재정자립도 2018년 기준 42.52%로 전년 대비 상승하였고, 재정자주도는 유사자치단체 평균(50.20%)를 크게 상회하는 74.85%를 기록하며 2022년에는 세입예산 7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입예산 규모 역시 2018년 기준 5조 7,761억원으로 전년 예산대비 6,719억원이나 증가하였고, 이에 비례하여 도민의 사회복지를 위한 세출예산 또한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그 사이 인구는 8만명(12%)이나 늘었고, 외국인 관광객은 2013년 233만명에서 2016년 260만명까지 늘었다.

검사~18대 의원 시절

사법시험 합격 이후 검사  변호사로 지내오다가 한나라당의 당내 혁신 차원에서 이회창 총재의 이른바 '젊은 피 수혈'로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 활동을 시작하였다.


참고로 왼쪽에서 2번째는 김부겸

이듬해인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양천구 갑 지역구에 공천되어 새천년민주당 박범진 후보를 꺾고 당선에 성공, 젊은 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개혁적이고 소신있는 언행들로 유명해졌는데, 미래연대의 주축 멤버로서 보수 일색이던 당 내부에 이때부터 젊은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이후 남경필, 정병국과 함께 한나라당의 개혁을 주도하는 소장개혁파 운동을 이끌었고, 당 지도부와 부딪히면서 정치이력을 이어왔다.



탄핵 역풍 이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생존한 몇 안 되는 서울권 야당 의원이었을 정도로 당 지도부의 결정에 동요하지 않았고 잘못된 방식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 과정에서 당 안팎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양천구 목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역구 관리에 소홀히 하지 않고 민심을 살피며 기반을 다져나갔다.

2004년 17대 총선 직후에 치러진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당 최연소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당 지도부에 입성하였고,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에서는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대통령 경선을 완주하게 된다. 이때 대통령 경선에서는 떨어졌지만 페이스메이커로서 보수층의 격려와 함께 40대 대권주자로서 신선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후 양천구 갑에서 국회의원 내리 3선에 성공하게 되고, 2009년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당내 쇄신 바람을 주도하였다.

2010년 3월에는 출향 28년, 정치인생 10년을 내걸고 "6.2 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디자인에 올인하는 겉치레 행정이 아닌 일자리, 교육, 집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행정 하겠다"며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을 정면 비판하였고. 당시 지방선거 최대 이슈로 부각되던 '초.중교 무상급식'에 대해 야당의 전면 실시 주장과 비슷한 '친환경 의무급식'을 주장하여 오세훈 시장과 견해를 달리 하기도 하였다. 기사1, 기사2



하지만 오세훈 후보에 맞서기 위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한테 근소한 차이로 패하며 인지도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후 2010년 7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한나라당 사무총장 공천심사위원장, 최고위원을 두루 역임하며 대중적 정치 행보를 걸어왔다.

2011년에는 한국 정당정치의 비정상적 공천시스템 개혁과 선진 정치를 위한 선거구 개편 문제를 거론하며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였다. "친서민 정책의 확대"를 주장하면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나름 배수의 진을 치고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4위로 낙선하게 되어 이에 책임을 지고, 2012년 5월을 끝으로 여의도 중앙정치무대를 떠났다.



현실정치를 떠나 1년여간 정치적 휴식을 취하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독일 아데나워 재단, 중국 베이징대 등에서 방문학자(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수학하면서 국외 선진 정치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2013년 말에 국내로 돌아오게 된다.

 

2014년 2월에는 NH농협은행카드, KB국민카드, 롯데 카드 등 '금융 3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자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젊고 유능한 변호사들과 함께 ‘개인정보유출 국민변호인단’을 꾸려 국내 피해자 5만여 명을 대리하여 무료 공익소송을 사회적으로 주도해 나갔다.

민선 6·7기 제주지사

2014년 6.4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출마를 계획하고 있느냐는 세간의 관심이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새누리당 지도부로부터 '당내 중진차출론'이라는 명목으로 제주도지사 출마를 압박 받게 된다.

이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자신의 출신지인 제주지사에 출마하여 새정치민주연합 신구범 후보를 꺾고 득표율 60%를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임기 초반에 "불합리한 도의회의 예산 관행을 타파하겠다"며 제주도의회와 예산안을 두고 갈등을 겪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도의회와 화해하며 서로 소통과 협치를 강조하는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현직 도지사 신분이지만 제주도가 중앙정치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국회의원 시절에 비하면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주의가 현존하는 한국 정치의 잘못된 현실상 작은 지역적 기반을 어떻게 뛰어 넘어설 것인지, 대중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에 어떻게 어필하고 자기 세력을 키워갈 것인지가 과제로 남는다.

본인도 대권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는 중이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어 왔지만 비교적 어린 나이와 짧은 경력 때문에 힘들다는 평이 대다수. 하지만 젊은 나이인 만큼 2022년 대선까지 노릴 수 있는 잠룡으로 거론되고 있다.

2016년 11월 15일 새누리당 비박계의 임시 지도부인 비상시국위 12인 공동대표중에 한명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비상시국위 출범으로 분노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로부터 지지율 합쳐서 10%도 안되는 대선주자들이 당을 먹칠한다면서 남경필, 오세훈, 김문수와 같이 대선주자에서 사퇴하라는 막말을 들었다.

2017년 1월 4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개혁보수신당(가칭, 후에 바른정당)에 입당하였다.

2017년 1월 3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8년 2월에는 소속된 당인 바른정당 국민의당과 통합을 의결한 뒤 바른미래당이 출범할 예정인데, 같은 남원정의 일원이었던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통합에 반발하여 자유한국당 복당을 선택했으며, 정병국 의원은 바른미래당에 따라가는 것을 선택했는데, 원희룡 지사는 바른미래당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출하면서도 자신은 남경필 지사와는 다르다면서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은 절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비주류 출신의 보수계 정치인이라 친분이 있는 정두언 전 의원에 따르면 무소속으로 제주지사 재선에 도전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바른미래당으로 따라가느냐, 무소속으로 남느냐를 두고 고민 중이다. 일단은 바른미래당 창당에는 합류했다. 창당이라는 축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으며, 아직 심사숙고중이라는 이유로 바로 탈당을 선언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으며, 설 연휴때까지 잔류냐 탈당이냐를 장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3월 중순이 되도록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거기에 자유한국당에서 제주지역 공천을 완료하면서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그리고 2018년 4월 10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다. 이로써 남원정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2018년 4월 17일 제주도지사 재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하고있고 정당도움을 받지못하는 무소속으로 있음에도 민주당 문대림 후보와 여론 조사에서 오차 범위 내 1~2위를 다투면서 뛰어난 개인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5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입당설이 돌아 썰전에서 언급되기까지 했다. 원희룡은 5월 1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도민들이 명령한다면 민주당에도 입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상으로 접전으로 보이던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를 11.71% 포인트 격차로 여유롭게 누르고 당선되면서 지방선거 이후 범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하였다. 이에 따라 향후 야권발 정계 개편과정에서 상당한 러브콜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언제 당적을 가질 것이냐는 질문에 “자신도 모르겠으며 자신이 시기를 정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을 하였는데 야권 개편 전까지는 무소속을 유지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섣불리 야당 쪽으로 입당할 경우 제주도의회 의석을 거의 싹쓸이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마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정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요인으로는 매우 혼탁하게 진행된 민주당 당내 경선으로 인해 발생한 문대림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 논란, 원희룡의 '인물론'을 앞세운 홍보 전략 등이 꼽힌다. 자세한 내용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광역단체장의 제주특별자치도 항목 참조.

6월 14일 김어준이 앞으로도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제로냐고 묻자 예라고 답했다

2018년 8월 20일 협치도정을 위해 행정시 시장을 친여성향을 띄는 사람들로 임명하였다. 5대 지선에 통합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고희범  민주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제주시 행정시장 내정자로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을 서귀포 행정시장 내정자로 추천하였다. 두 후보는 행정경험이 전무하고 투기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되어 힘든 청문회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청문회에서 생각 외로 무난히 적격판정을 받았다.#

원 지사는 6월 지방선거때부터 제주도의 블록체인(Blockchain) 특구지정과 제주코인을 발행, 암호화폐공개(ICO)도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가 있다. 이를 8월 초에는 공식화하였고 2018년 8월 30일 제1차 시도지사 간담회때 제주특별자치도의 블록체인 특구지정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였다. 원 지사가 구상하는대로 성공한다면 이제껏 대한민국의 규제에 걸려 블록체인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IT계열사들의 제주도행이 줄줄이 이어져 제주도민들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여나가는 광역지자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안전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기에 지금 당장 특구지정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아직까지는 우세하다. 다만 제주특별자치도가 블록체인 특구에 지정된다면 해외기업 20여곳이 본사 이전을 제주로 검토하고 국내 기업도 투자를 고민하는 등 한국판 실리콘밸리가 되어 4차 산업혁명시대의 미래먹거리 산업이 될 수도 있어 이를 신중하게 검토하여야한다. 또 블록체인기술을 통해 농축수산물의 품질관리를 하고 탄소 저감행동 마일리지제를 추진하는 등 다양한 부문에서도 이점이 될 수 있다. #

2018년 9월 27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소환 조사를 받는다고 한다.

현재 민주당, 한국당은 물론 다른 야당에도 입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아 추후에 다른 무소속 정치인들과 함께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이 있다.

2018년 10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한 국회 행안위 국정감사가 제주도청에서 실시되었다. 원 지사는 안전에 문제가 될 정도로 포화된 제주국제공항의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제2공항 건설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제2공항을 추진함에 있어 최소한의 환경 훼손 만을 할 수 있도록 힘쓰고 절차적인 문제, 반대 의견까지 충분히 고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국회에 계류 중인 4·3특별법 개정법률 발의에 조속한 협조를 요청하였다. 또 강정마을 공동체회복 지원사업도 국회의 관심을 당부하였다.

2018년 11월 30일, 결국 검찰에 기소되었다. 만일 여기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는다면 향후 정치인생에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 14일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 80만원을 선고받았다.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기 때문에 지사직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고 원 지사 또한 항소를 포기하면서 1심 판결이 유지되게 되었다. 원 지사는 항소를 포기하면서 도정 전념으로 반드시 보답하겠고 말하였다.

2019년 3월 30일 본인의 유튜브 채널인 원더풀TV에서 첫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본인과 관련된 여러 사건들에 대해서 기존의 방송 매체와 인터넷 언론만 갖고는 자신의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제때에 전달되지 않고 있어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다른 목적과 의도를 갖고 왜곡해서 전달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본인도 그동안 답답했다고. 아직 유튜브가 처음이라 서투른 티가 많이 난다.

 

2020년 1월 박형준 통추위원장의 제의를 받고 새로운보수당 자유한국당이 통합하여 구성할 보수신당(미래통합당) 참여를 결정하였다.

3월 26일 서울 강남에 본가를 둔 20대 여성 미국 유학생이 자가격리 수칙을 위반하고 의심 증상이 있음에도 가족들과 제주도 내를 여행한 뒤 확진 판정을 받자 그들이 이용했던 리조트 및 음식점들이 무더기로 집단 휴업에 들어갔고, 도민 30여명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직접 긴급 브리핑을 열어 이들 가족으로 인한 영업손실 등의 모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특히 이 브리핑에서 원 지사는 단단히 화가 난 듯한 강한 어조로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5월 말 드디어 대권 도전을 시사했다. 지사직 사퇴는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민주당 안희정, 이재명 경선 후보의 사례를 들며 경선에서 이기면 하겠다는 입장. #

9월 22일 제주지검에게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당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1월 2일 청년 취·창업 지원기관인 제주시 연북로의 제주더큰내일센터의 교육생들과 직원들에게 피자를 돌린 것이 위법하다는 이유이다. 이에 원희룡은 SNS를 통해 정치적 해석을 달지 않겠다며 검찰도 사정이 있지 않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2021년 4월 21일 제주도의회와의 질의에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3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지방선거에 불출마하는만큼 차기 대선행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5월10일 열린 회의에서 원희룡 지사는 “성평등, 여성, 가족 문제는 어느 한 부서의 문제가 아닌 모든 정책·사업이 성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제주도는 평화의 섬, 여성의 섬, 설문대할망의 섬으로 성평등 분야는 어느 지자체보다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선 출마를 이유로 제주지사직에서 7월 이후 사퇴할 확률이 높은데 이럴 경우 현재 행정부지사로 내정된 구만섭 행안부 정책기획관이 차기 지방선거까지 도지사 권한대행으로 직무를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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