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

이창호 - 기풍과 묘수

반응형

 

이창호의 바둑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하자면 두터움, 침착함, 형세판단, 끝내기다. 강태공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느려 보이나 두터운 행마를 주무기로 삼았다. 스승인 조훈현이 쾌속행마로 제비라는 별명을 얻은 것을 생각하면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게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다.

 

다른 기사들이 아무리 유리해도 두텁고 침착하게 두어 정확한 끝내기로 마무리해 역전시키니 그 중압감과 패배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나이웨이가 "이창호 九단과 바둑을 두면 참 이상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는데도 바둑은 언제나 불리한 것 같다." 했을 정도. 상대는 '초중반에 유리한 국면으로 만들지 않으면 후반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무리수를 두고, 그러다가 후반에 이창호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창호가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어서 분명 형세는 자신이 앞서는데도 무표정한 이창호를 보며 자멸하는 경우가 많다. 달리 보자면 이창호는 말 그대로 늪바둑을 두는데 상대가 그 늪에 한번 빠지면 절대로 못 나온다. 상대에게 원하는 대로 둬주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건 이창호가 상대를 자신이 만든 늪 속으로 몰아넣기 위해 바람을 잡는 것일 뿐이다.


조훈현이 이창호의 전성기에 계속 당했던 패턴이 바로 이것으로, 초중반 조훈현 쾌속행마로 우세 → 조훈현의 무리수 → 이창호의 끝내기로 역전 식으로 계속 당했다. 아직도 끝내기와 형세 판단에 있어서는 이창호가 최정상급임을 인정받고 있으며, 하물며 전성기 때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기원 기사실에서 모여 관전할 때 끝내기 즈음이 되면, "창호 어디갔어? 창호한테 물어봐!"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고 한다.

 

양재호에 따르면 이창호는 극초반부터 계가를 한다고 한다. 프로라면 계가 판단이야 모두 가능한 일이지만, 초, 중반부터 집이 명확하지 않고 형세가 돌 하나하나에 따라 계속 왔다갔다하는데도 계가를 시합 내내 거듭하며 종국까지 숙고할 수 있는 끈기와 계산력을 겸비한 기사는 이창호를 비롯해 소수의 몇몇뿐이다.

고수 치고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에게도 반집 승부가 많이 나는 기사 중 하나이다. 때문에 하수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몇 번만 더 둬보면 그 반집 차이가 타 기사의 백집 차이보다 크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반집 승부를 하는 이유는 반집으로 이기나 불계로 이기나 이기는 것은 똑같기 때문. 또한 무조건 잡을 것 같은 대마를 잡지 않는 습관도 있는데, 그 이유는 대마를 잡으려다 보면 운과 실수로 판이 뒤집힐 수도 있지만 대마를 죽이지 않고 다른 곳에서 이득을 취해 계가로 가면 반드시 이길 수 있어서라고 한다.

이는 스승 조훈현 九단도 언급한 적이 있는 부분인데, 이창호가 프로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초반에 유리한 바둑에서도 대마를 노리거나 큰 집 차이로 이기는 걸 노리지 않고 작은 집 차이로 이기는 승부를 많이 하자 혹시 어떤 연유로든 큰 집 차이 승부를 못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창호와 그러한 대국들에 대해 복기를 하면서 넌지시 물어보았는데 이창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큰 집 승부를 하려면 대마를 잡아야 하는데 대마를 잡기 위해 준동하다간 상대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마를 살려주는 대신 다른 곳에서 차근차근 대가를 치르게 하면 작은 집 차이로 확실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말은 반상에서 수십 년 정진한 노년 기사들이 새파란 신생 기재들에게 일러주는 충고에 알맞지, 중학생 정도의 어린아이가 스스로 깨우치고 실행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한창 성장하는 어린 기사라면 당연히 싸움을 좋아하고 상대를 통쾌하게 누르는 대승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창호는 당시 승부의 본질을 꿰뚫는 확고한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조九단이 신문 인터뷰에서도 한 적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가 바둑TV에서 해설을 하던 때에도 대국 중 잠시 쉬는 시간에 상대 진행자와 이창호에 대한 대화를 잠시 나누다가 직접 담담히 말한 적이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 사람은 반 집에 땅을 치지만, 그런 상대를 보고 창호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물러서서 그런 건데, 억울해 하실 것이 없는데?'하면서 말이다.

ㅡ조훈현 (월간조선 02년 4월호)

 

그런데 2005년 이후 부진이 계속되면서 기풍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먹잇감이었던 창하오에게 세계대회 결승에서 두 번 만나 두 번 다 준우승하기도 하고, 국내에서는 목소리가 여린 후배나, 갑자기 나타나 대마를 때려잡는 후배 또는 이창호 잡는 기계가 등장하면서 닥치고 전투 이후 대마를 잡아먹는 바둑도 자주 보여주신다. 대단한 것은 기풍도 바뀌고, 예전처럼 정확한 형세판단을 보여주지 못하면서도 항상 정상권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제 '이창호 스타일의 바둑은 계속 이겨서 재미없으니까 저렇게 둔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부처가 아수라의 칼을 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기풍 변화를 두고 본인 자서전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초반에 안정적으로 두어서 불리하게 출발하더라도 중후반에 타개와 끝내기로 역전하는 기존 기풍을 유지하면 본인보다 끝내기가 더 정밀한 후배 기사들에게 밀릴 것 같아서, 초반부터 전투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 가는 방향으로 기풍을 바꾸었다고 한다.

2016년 3월 이세돌 九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3연패를 당하던 시기에는 그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었다. 관전 중 던진 한마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창호 九단의 견해는 당시 해설하던 그 어느 프로기사들 보다 정확하다고 결론이 나왔다. 2국에서 알파고의 수를 해설하던 기사들조차도 '인간들 중에서 이런 수를 둘 만한 사람이 이창호밖에 없다!'며 흥분하는 등 그가 남긴 족적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보여주었다.

 

압도적인 계산력으로 승리를 따내는 알파고의 기풍과,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데도 이기는 스타일이 전성기 시절 이창호 九단과 가장 흡사한 것 같다는 분석이 많이 나오곤 했다. 지금도 우스개로 '전성기 시절의 이창호와 알파고가 대결하면 누가 이길까?' 하는 VS놀이를 하기도 하는데, 당시에는 전성기 시절의 이창호였다면 알파고를 발랐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진지하게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알파고에 대해 더 알려진 뒤로는 아무리 전성기 이창호라고 해도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 전에 호언장담했듯 손쉽게 5대0이나 4대1 승부를 내기는 힘들 거라고 보는 의견이 대세이다. 이후 알파고가 마스터로 버전업되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되어버렸지만, 그만큼 지금까지도 전성기 시절의 이창호가 강력한 승리 철학과 수읽기로 무장하고 있었던 기사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자서전인 이창호의 부득탐승('11년 8월 발간)을 읽어보길 바란다. 본인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의 이야기까지 담아놓은 책이다.

2016년 시점에는 한국바둑리그에서 대마를 때려잡는 바둑은 조금 지양하고 예전처럼 끝내기 공부를 하는 듯한 기풍이 드러나고 있다. 대신에 마샤오춘이나 구리처럼 초반에 포석을 잘 깔고 그 포석의 우세를 지키려는 바둑을 둔다. 문제는 창하오 九단한테는 약해졌다는 것.

최근 기풍으로는 알파고가 등장한 이후로 대부분의 기사들은 인공지능 정석중에 3.3정석을 많이 두어 실리적인 바둑을 두고 있지만 이창호9단은 최신 포석의 흐름을 이어가지 않고 세력을 만들어 공격하는 바둑을 두고 있다.

주요 묘수들

바둑의 메타를 바꾸다 보니 묘수가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지경이다. 특히 많았던 것은 끝내기의 묘수, 축머리의 묘수이다. 축머리의 묘수 중 진신두는 한국 바둑 최초로 발견했고, 이른바 자폭의 묘수와 같은 트릭, 공배의 묘수와 같은 전설 속에 묻혀 있던 묘수들도 있다.

 

https://youtu.be/iueCclSC5cI


1989년 국수전(vs 조훈현) 대국에서 작렬한 끝내기 묘수(1분부터). 이창호가 三단이던 시절 끝내기에 강하다는 것을 처음 보여준 바둑이었다. 사실상 이창호 묘수의 신호탄. 이때에는 이 끝내기 묘수로 판은 이겼지만 아직까지 조훈현에게 이기진 못했고(3-1로 조훈현 타이틀 방어), 이듬해(1990) 조훈현을 3:0으로 관광보내고 국수전 타이틀을 빼앗았다. 그런데 이 묘수가 인공지능으로 확인해 본 결과 1선에 붙이는 수는 좋은 수가 맞지만 그 이후 전개는 바둑의 전체적인 판도에서는 그렇게 좋은 수는 아니었다고 한다.

 

youtu.be/qVKrNamKNr0



이창호의 1996년 국수전서 작렬한 끝내기 묘수(1:07 부터). 이 수는 바둑계에 끝내기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youtu.be/o_EoYaHXQJA


이른바 이창호식 '숨은 한집'을 찾아낸 끝내기 묘수(01:00부터). 2000년 응씨배 8강전. 하필이면 이 대국 상대가 이창호 천적 요다 노리모토라서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바둑이다. 눈알 터지는 반집 끝내기 승부 상황에서 이창호가 요다 노리모토의 집을 선수로 한 집 깎는 엄청난 묘수를 작렬하고 요다가 한방에 무너져 버리는 상황이다.

 

youtu.be/-FN9uu4EJ10

1997년 동양증권배에서 마샤오춘을 재기불능으로 몰아넣은 기상천외한 축머리 묘수.(01:00 부터) 이창호 축머리 묘수 중에서 '삼신기'로 불린다. 이 외에도 이창호의 유명한 묘수 5개를 선별한 영상이니 끝까지 보길 권한다.

 

youtu.be/2skZ3czQwTA

 


2000년 응씨배 4강전에서 위빈 九단한테 작렬한 자폭의 묘수(01:00부터). 이창호 스스로 자폭을 해서 위빈의 선수를 빼앗아 골로 보내는 장면이다. # 동영상에도 나오지만 위빈은 이창호의 자폭 묘수 한방에 멘탈붕괴 상태가 되어서 2국에서 초반에 바둑을 말아먹고 이창호를 결승으로 올려보낸다. 그리고 그 결승에서 창하오 九단한테 3:1로 우승을 따냈다. 이 2000년 응씨배는 16강에서 이창호를 제외한 모든 한국 바둑기사들이 전원 탈락하고, 8강에서부터 이창호 혼자서 중국, 일본기사를 꺾고 우승을 따냈다. 이 때 이창호는 왕리청-요다 노리모토-위빈-창하오를 꺾었다.

 

youtu.be/HXWteGJj7Nw


2003년 농심신라면배 최종국에서 중국의 뤄시허 九단을 상대로 시전한 공배의 묘수. 바둑 책에서나 볼법한 엄청난 묘수라서 당한 뤄시허도 멘붕하고 이 대국을 검토하던 검토/해설진도 동반 멘붕한 엄청난 묘수. 또한 18분부터는 이세돌의 유명한 축 묘수에 버금가는 멋진 묘수도 볼 수 있다. 이 축에 대해 이영구 九단은 "마술 같은 축몰이"라고 평했다.

반응형